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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경제

"흙탕물로 'We are the World'하시죠"


[피플]이수호 대우증권 마케팅부 과장


"자판기에서 흙탕물을 판다?"

지난 10월15일 강남역 한복판에 괴상한 자판기가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흙탕물 자판기'다. 말 그대로 흙탕물을 판매하는 자판기다. 마실 수도 없는 흙탕물의 가격은 한 병당 1000원. 과연 누가 살까 싶지만 한 달도 채 안 돼 3000여명이 이 흙탕물을 사갔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이 '흙탕물 자판기'는 사실 대우증권 (24,600원 1200 -4.7%)이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위한 기부 캠페인의 일환으로 한 달간 한시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시민들이 1000원을 주고 흙탕물을 사면 대우증권이 9000원을 보태 1만원을 유니세프에 기부하는 식이다.

1만원이면 아프리카 어린이가 약 1년간 깨끗한 식수를 마실 수 있는 금액이다.

이 자판기는 설치되자마자 강남역의 명물이 됐다. 트위터를 통해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각종 온라인포털 검색어 1위에 올랐고, 방송, 신문, 라디오 등 각종 언론에서도 이 이색 자판기를 경쟁적으로 소개했다.

덕분에 대우증권은 사회공헌활동은 물론 광고효과도 톡톡히 봤다. 대우증권이 흙탕물 자판기에 들인 비용은 약 5000만원 정도. 내부적으로는 비용 대비 100배 이상의 효과를 얻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흙탕물을 기부 아이콘으로 변신시킨 장본인은 이수호(35) 대우증권 마케팅부 과장이다. 부서 내에서 브랜드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이 과장은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기부 캠페인을 고민하다 이 자판기를 기획했다고 한다.

"식수가 없어 흙탕물을 마시고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했어요. 사실 기대이상의 관심에 놀랐습니다. 흙탕물을 사러 분당에서 오셨다는 시민을 만났을 땐 눈물을 흘릴 뻔 했어요."

이수호 과장은 지난 3월 KT에서 대우증권으로 이직하면서 여의도 증권가에 첫발을 내딛은 초보 증권맨이다. 하지만 마케팅 능력은 이미 관련업계에서 정평이 나있는 10년 경력의 베테랑. 누구나 한번쯤 보고 들었을 KT 쿡(Qook)의 아기 발도장, 옥상 플래카드, 올레(Olle)의 애니메이션 반전광고 등이 바로 그의 작품들이다.

잘나가던 직장을 뒤로하고 업무환경이 전혀 다른 증권사로 자리를 옮긴 것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좀 더 늦기 전에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전혀 다른 업종이지만 롤(Roll, 역할)은 같기 때문에 두려움 같은 건 없습니다. 매일 양복에 넥타이를 매는 것이 낮 설 뿐이죠. 하하"

그의 재치있고, 독특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형광등 켜지듯 반짝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는 없어요. 남보다 많이 듣고, 보고, 고민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죠. 저는 하루평균 3시간 정도 글로벌 웹서핑을 하면서 정보를 얻죠. 또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행력입니다. 이번 흙탕물 자판기도 단순하지만 기획에서 실행하는데 까지 무려 4개월 이상 걸렸죠."

때 되면 하는 식의 금융권의 사회공헌활동이나 판에 박힌 주입식 금융광고 속에서 그의 남다른 활약이 기대된다.